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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도 아냐, 가관도 아냐? 그럼 뭐지?

요즘 일상에서 "난리도 아냐~", "가관도 아냐~"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맞을까요? 당연히 틀린 말입니다. 즉 "난리야", "가관이야" 라고 해야 맞습니다.

 

먼저 "난리"라는 말은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누구나 아는 말입니다. 보통 "어떤 일로 어수선한 상황"을 "난리가 났다"라고 하는데, 왜 굳이 이 말을 뒤집어서 "난리가 아냐", "난리도 아냐" 이렇게 표현할까요? 보통 "아니다"라는 말을 붙여서 "부정적"인 표현을 할 때가 많은데, "난리"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이므로 굳이 여기에 "아니다"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죠. "난리가 아니면" 그냥 정상적인 상황인가요?

 

"가관이 아냐"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가관(可觀)"이란 말은 "꼴이 볼만하다는 뜻으로, 남의 언행이나 어떤 상태를 비웃는 뜻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즉 "가관" 자체가 아주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하므로 굳이 "가관이 아냐"라고 표현해서는 안 되고 "가관이야"라고 해야합니다. "가관이 아니면" 오히려 "비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 돼버리죠.

 

 

미국에서도 1900년대초부터 흑인들 사이에 "I ain't nothing"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I am nothing." 즉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즉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Nothing을 사용해서 이미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데도 굳이 not을 써서 이중부정 형태로 잘못 표현한 것인데, 언중들이 많이 쓰다보니 이젠 표준어처럼 굳어져 버렸죠.

 

우리말에도 아주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안절부절"이라는 한자어인데요. 그 자체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므로, 그 상황에서는 "안절부절하다"로 써야하는데 언중들이 "안절부절 못하다"라는 말을 자주 쓰다보니 이제는 표준어가 아예 "안절부절 못하다"로 바뀌고 오히려 바른 표현인 "안절부절하다"는 틀린말이 돼버린 우스꽝스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제 생각에는 저런 건 계몽을 통해서 바로잡아야지 한자를 봐도 명백히 틀린 의미를 왜 표준말로 둔갑시키는 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위 두 가지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언어 정책이 잘못된 말이라도 "서울에 사는 교양있는 사람" 다수가 잘못된 표현을 쓰면 그 말을 표준어로 바꿔버리는 어이없는 정책때문에 아마도 "난리가 아니다"가 "난리다"를 대체하고, "가관이다"가 "가관이 아니다"로 표준어가 바뀌는 상황이 곧 올 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언어습관이 확산되기 전에 계몽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하는데...  참 슬픈 현실이지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언어에도 적용되다니요.

 

우리 스스로가 매사에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고 바르게 쓰려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영어는 철자 하나 틀려도 기를 쓰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국어 문법은 제멋대로 쓰고 틀린 점을 지적하면 오히려 까다롭다느니 기분나쁘다느니 이런 반응을 보이니 참 아이러니 한 상황이네요.